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하지만,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집념은 때론 원인보다 결과를 직접 바꾸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한 욕심, 또는 의지가 상상력과 과학기술을 만날 때 새로운 돌파구가 만들어지기도 하죠. ‘온실가스로 지구 평균기온이 높아지고 있다면, 힘들게 온실가스를 줄이는 대신 우리가 직접 기후를 조절하자’라는 아이디어는 어떤가요? 꽤나 솔깃한 제안으로 들릴 수도 있고, 함정이 숨어 있는 ‘악마의 유혹’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파리협정에서 전 세계가 약속한 지구 기온 상승 억제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 지구의 기후를 직접 조작하는 기술, 즉 지구공학(Geoengineering, 기후공학(climate engineering)이라고도 함)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지구공학이 공상과학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옵션’의 영역에 들어서면서, 유네스코는 해당 기술의 실험이나 실행 여부에 앞서 윤리적·사회적 측면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공지능 때도 그러더니 또 윤리 타령이야?’라는 몇몇 분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의 이러한 제안을 우리가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오늘 뉴스레터를 놓치지 마세요. 힘든 온실가스 감축 노력 대신, 지구의 기온을 직접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AI 생성 이미지)+ 어려워 보이는 최선에 매달릴 것인가, 더 빠른 차선에 도전할 것인가잘 알려져 있다시피 2015년에 체결된 파리협정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인류 전체의 약속이었습니다. 설령 그게 안 되더라도 2°C 이상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죠. 하지만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5(±0.13)°C 상승했음을 발표한 바 있고, 현재 각국의 탄소배출 정책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한 금세기 말까지 지구 기온은 2.5-2.9°C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매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가 열릴 때마다 미래세대들은 절규와 호소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기온 상승을 멈추기 위한 실질적 변화는 멀게만 보입니다. 문제는 기후변화를 멈추려는 노력이 그저 ‘실패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는 폭염, 폭우, 혹한 등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기상현상은 이미 수십억 명의 삶과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데요. 단지 합의와 실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방치하다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정치적·경제적 부담을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재의 급박한 상황이야말로, 최선이지만 달성이 어려운 방안 대신에 차선이지만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으로서 지구공학이 주목받는 배경입니다. + 기후 시스템 조절, 구체적 방법과 위협은?거창한(?) 이름 때문에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서 튀어나온 용어처럼 느껴지지만, 지구공학은 그 개념과 실행 가능성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기술적 측면에서 지구공학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그중 하나인 ‘이산화탄소 제거(Carbon Dioxide Removal, CDR)’ 방법은 사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기 중에 쌓인 이산화탄소를 직접 걷어내는 것을 통칭하는 CDR에는 직접공기포집(DAC),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BECCS) 등이 있고, 나무를 심어 지구 생태계의 탄소 제거 능력을 높이는 산림 복원 역시 큰 틀에서 CDR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지구 전체의 역량을 높이는 방법이지만, 무한정 빠르게 숲을 늘릴 수도 없고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의 탄소 저장 전략과 유지비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구공학의 또 다른 방법은 태양복사조절(Solar Radiation Modification, SRM)입니다. 태양에서 오는 빛의 일부를 반사하거나 차단함으로써 지표면에 도달하는 열에너지 자체를 줄이는 방법이죠. 햇빛으로 뜨거워진 방을 식히기 위해 창문에 커튼을 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요. 세부적으로는 특정 입자를 뿌려 지구 대기 중 구름의 빛 반사율을 높이는 방법도 있고, 화산 폭발 때 발생하는 화산재의 원리와 비슷하게 지구 성층권에 입자를 살포해 태양빛 차단과 냉각 효과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그리고 대기 중 살포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단기간에 지구 기온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 방법을 쓸 경우 지구 기후 시스템의 변화 양상이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예측과 컨트롤이 어렵다는 점, 한 지역에서의 긍정적 효과가 다른 지역에서의 심각한 기후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SRM 방식의 개념도 (일러스트 출처: Physics Today, American Institute of Physics)+ 거버넌스의 공백 속, 세상으로 먼저 나온 실험들지구공학 논의의 배경이 결국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제한으로 지구 기온 상승을 막기에 힘이 부친다는 사실에 있는 만큼, 신속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SRM 기반의 기술 연구와 실험은 최근 지구공학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대 효과만큼이나 잠재적 위험이 크다는 우려 속에서 일종의 비상수단으로서 엄격한 과학적 연구 정도는 해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는 상황이죠. 하지만 이러한 연구가 충분한 논의와 명확한 규범 없이 진행되면서 충돌과 대립이 발생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는데요. 그 대표적 사례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추진했던 성층권 제어 교란 실험(SCoPEx)을 들 수 있습니다. 빌 게이츠도 후원했던 이 프로젝트의 연구진은 2021년 스웨덴 우주항공 당국의 지원을 받아 북극권에서 열기구를 이용한 에어로졸 살포 실험을 준비하는데요. 하지만 스웨덴 북극 지방의 토착민인 사미(Saami) 사람들과 환경단체가 강력한 반발을 했고, 결국 2024년에 더 이상의 진전 없이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하버드대의 실패 사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실험들은 지금 이 순간 지구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저 간단한 열기구와 장치만으로도 소규모 테스트가 가능하기에 책임과 의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나 단속도 없는 상황에서, 지지부진한 국제 기후 협력에 환멸을 감추지 못하는 신진 연구자들은 신기술의 가능성에 미리 투자하려는 기업들의 손을 기꺼이 잡고 있습니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기후경제학자 거놋 와그너(Gernot Wagner)는 여러 스타트업 기업들의 SRM 실험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하죠. “정치는 엉망이지만 기후기술은 섹시해요(Politics is messy, climate tech is sexy). 그 모든 문제들을 한번에,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기술 치료(techno fix)가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어요?”
+ 연구만큼이나 윤리적 논의가 중요한 이유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판별하고 그 부작용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연구와 실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양한 가능성들을 시험해 보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자유 또한 충분히 주어져야 해요. 하지만 유네스코는 그러한 기술이 전 인류의 미래를 바꿀 만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면, 아울러 기술의 이익이 불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고 그 피해도 비대칭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초기 실험 단계에서도 윤리적이며 사회적인 논의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던 2021년에 내놓은 「인공지능 윤리 권고」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물이었습니다. 해당 권고가 인공지능에 대한 찬반 투표가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운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한 선결조건’을 제시했던 것처럼,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는 지구공학이 아직 구체적인 추진 동력을 마련하기도 전인 2023년에 해당 기술을 윤리적 관점에서 다룬 보고서(『Ethics of Climate Engineering』)를 발간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윤리적 논의의 틀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습니다. 보고서는 특히 ‘미끄러운 비탈길(slippery slope) 논증’을 통해 신중한 검토와 명확한 거버넌스가 없는 가운데 진행되는 실험들의 잠재적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데요. ‘일단 실험이니까 괜찮다’라면서 하나둘 테스트가 진행되다 보면,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였으니 계속 진행해 보자’라는 방향으로 전 사회가 쉽게 미끄러지게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미끄러운 비탈길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끝까지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한번 가속이 붙으면 소규모 연구가 대규모 배포로 이어지기까지는 순식간이고, 그때가 되어 위험을 경고하거나 보완을 요청하는 것은 이미 늦어버리는 경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비록 기술의 태동기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지구공학에 대해 다음의 질문들을 던지고, 또 그 대답을 준비해 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기술은 정말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전 인류의 노력을 대신할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는 이 결정을, 선택권도 없이 시스템 유지를 영원히 책임져야 할 미래세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면서, 유네스코는 그 결과가 미래 기술의 연구·실험·배포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안내하는 거버넌스에 반영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런던 도심에서 청년 환경 시위대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행동 대신 기술을 선택하기 전에, 우리는 그 선택과 관련된 윤리적 질문들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Loredana Sangiuliano / Shutterstock.com)+ 윤리적 질문, 어쩌면 공통의 질문현재의 상황에서 지구공학을 바라보는 유네스코를 비롯한 주요 관련 국제기구들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기후 비상사태에 직면하여 우리는 지구공학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고려해야 하지만, 그러한 기술의 활용이 파리협정의 약속을 희생시키거나, 명확한 윤리적 프레임워크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가브리엘라 라모스 유네스코 인문사회 사무총장보, 2023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달리 말해 지구공학이 우리 미래의 실질적인 선택지 중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 연구부터 개발과 도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하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에 몰려있는, 발전이 더딘 국가들을 통칭)와 원주민 공동체 및 청년 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의사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모든 결정이 단일 국가나 민간 기업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협의를 통한 국제적 거버넌스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묻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기술이 기후마저 조작할 수 있다면, 우린 해야 할까요? 이 솔깃한 질문에 대해 유네스코라면 이렇게 되물을 것 같습니다. 그 기술이 어떤 가치 위에서, 누구를 위해 쓰일 것인지를 먼저 물어보자고 말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지구공학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그 어떤 신기술과 변화 앞에서도 공통적으로 고민하게 될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과학기술이 불러올 변화가 아직 뿌연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그 변화의 윤리적 의미를 성찰하면서 우리 각자의 ‘다름’을 존중할 줄 아는 목소리들을 하나로 모아 공동의 원칙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 혹은 주어진 과제와 상관 없이 꼭 거쳐가야만 하는 일일 것 같습니다. 유네스코가 지난 80여 년간 끊임없이 해 온 그 일에 전 세계가 기꺼이 동참해 준다면, 우리는 설령 조금 돌아가게 될지라도 반드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