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필자
- 강방식
- 소속
- 서울 동북고등학교 교사
청소년의 선거권 연령이 낮아지는 흐름에서 토론 수업은 왜 필요한가? 2007년에 오스트리아는 16세 이상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스코틀랜드는 2014년에 영연방 탈퇴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에 일시적으로 16세까지 참여시켰고, 2년 뒤 지방선거부터 16세 이상은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독일은 선거의 종류 및 주에 따라 16세, 혹은 18세부터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영국 전체도 올해 16세로 하향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2019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18세부터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선거권 연령을 낮추자는 사회적 논의에서 반대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아직 18세 미만인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다. 둘째, 나이 어린 청소년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는데, 이들의 정치적 행위로 학교가 파행적인 모습을 띨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와 스코틀랜드, 독일의 청소년은 한국과 달리 성숙한가?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일찍이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맞이하면서 노인들은 점점 많아지고, 청소년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정치가들은 대부분의 유권자, 즉 연령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공약을 내걸었다. 오스트리아 사회 정책은 점점 노인들을 위한 정책으로 바뀌고, 앞으로 살아갈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은 줄어들면서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껴, 비록 16세의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할지언정 이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여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스코틀랜드도 영연방에서 탈퇴할 것인가의 선택은 앞으로 미래 세대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정책이기에 나이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즉, 민주주의는 자신의 이해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다양한 의견 간 충돌을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를 이끌어야만 사회적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 이때 상대방의 이해와 가치를 비판적 시각으로 용인하고 존중하는 토론이 중요한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고등학생들에게 토론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학생들은 슬프게도 중학교 시절에 토론 수업을 해본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 토론 수업을 처음 접하게 되는데, 토론을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활동으로 받아들인다. 아마도 TV토론에서 여야 정치인들로 구성된 패널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을 보다 보니 학생들에게 자연스레 생긴 선입견이라 판단한다. 우리나라에서 TV토론이 시작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다. 그 이전까지 TV에서 토론이라는 형식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대담 형식의 의견 발표만 있었을 뿐이었다. 고등학교에서의 토론 수업 모델도 존재하지 않았고, 실제로 교실 현장에서 토론하는 선생님도 보기 힘들었다. 이 당시 조벽 교수님의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라는 책에서 “최악의 수업은 교사가 질문하고 교사가 답변하는 수업이고, 최고의 수업은 학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변하는 수업이다.”라는 문구를 인상 깊게 읽었다. 최고의 수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과연 학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변하는 수업이 도대체 무엇일까 고심하다가 직관적으로 이게 토론 수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이 토론 수업의 시작이었다. 25년 이상 토론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토론 수업 방식을 시도했다. 단순한 발제 형식의 토론 수업부터 지식교환형식의 지상(紙上) 토론, 국무회의식 토론, 월드카페 토론, 독서융합 토론, CEDA토론, 동북고 청문회식 토론, 호기심 천국 토론,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등 다양한 형식의 토론 수업을 펼쳤다. 형식은 다르지만, 학생들이 토론 수업 참여를 통해 공통으로 느끼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 토론 수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받아서 당황스러워한다. 둘째,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근거가 논리적이지 못한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입장을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토론 수업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학생들은 토론 수업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이 절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학생들은 3∼4차시에 걸쳐서 뉴스, 학술논문, 통계자료, 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논리적이고 타당한 자료를 조사하고, 자신의 입장에 대해 예상되는 반론마저 신중히 조사한다. 그렇더라도 토론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공론의 광장에 진솔하게 보여주는 행위예술이 된다. 즉 “(무지한)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진실이었음을 알려주는 퍼포먼스이다. 이런 창작 예술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켜나갈 인재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학생들은 어떤 토론 수업에 즐겁게 참여하는가? “안락사 찬반 논쟁을 해보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왜 전쟁을 하는가?”, “멸종 동물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까?”와 같은 토론 주제들을 교과 수업에서 학생들은 접하는데 학생들은 그다지 흥미를 못 느낀다. 주제들이 학생들의 삶과 그다지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다루는 토론을 좋아한다. 나는 이것을 ‘나의 문제의식으로 토론한다.’라고 말한다. 나의 문제의식이라는 것은 내가 현재 고민하는 것을 말한다. 한창 키가 자라고 몸무게도 쑥쑥 자라는 아이들은 안락사에 관심이 없다. 안락사는 먼 미래의 이야기이고 죽음을 앞둔 나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안락사 찬반 논쟁에 즐겁게 참여시킬 수 있을까? 안락사를 학생들의 삶에 연관시키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흥미 있는 토론 수업을 만들 수 있다. 한번 만들어보자. “우리 아빠는 중소기업 사장님이다. 최근 회사 사정이 좋지 못하여 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10억을 빌렸는데, 설상가상인 것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할머니가 3년째 산소 호흡기를 차고 생명만 부지하는데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 이번 달에 은행에 일부의 돈을 갚지 못하면 우리 집은 파산하여 아파트는 경매 처분되어 반지하 월세방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때 국회에서 안락사를 완화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아빠는 이것이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이번 주에 할머니의 산소 호흡기를 떼어 내는 안락사를 시행하고자 한다. 그래서 아빠는 가족들에게 말한다. 각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 보라.” 이와 같은 상황을 제시하고 학생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한번 토론해 보자고 한다. 그러면 안락사 찬반 논쟁은 남의 이야기,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고, 현재 나한테 닥친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어떤 학생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할머니의 산소 호흡기를 떼어 내는 안락사에 찬성한다. 왜냐하면 나는 반지하 월세방으로 이사 가기도 싫고 학원에 계속 다니며 좋은 대학에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너는 살인자구나. 네가 어렸을 때 너를 애지중지 키워준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이것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세 번째 원칙에 있는 ‘학생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다. 이 원칙에 의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토론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외교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바꾸면 러우전쟁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나라 이야기가 된다.
합의를 위한 숙의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가? 학생들과 25년 이상 토론 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들은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입장이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는 순수함이 있다. 비록 상대방을 헐뜯는 데 온 힘을 다하는 TV토론을 보면서 처음에 잘못된 토론관을 갖는다 해도 선생님의 도움으로 규칙을 지키면서 토론하다 보면 어느새 의견이 다른 친구들을 동지로 받아들인다. 너도 완벽하지 않고,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 너와 내가 힘을 합쳐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동지가 된다. 특히 최근에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든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에서는 서로 입장을 바꿔 토론하는 숙의 과정에서 합의할 수 있는 부분과 합의할 수 없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합의할 수 없는 부분은 앞으로 어떤 노력을 통해 다시 이야기해 볼 수 있는지 계획을 잡아 내일을 기약할 수가 있다. 앞으로 TV토론 방법은 학생들의 숙의형 토론 양식에 맞추어 바꿀 필요가 있다. 토론 쟁점에 대해 극단적인 입장을 서로 취할지라도 세심히 살펴보면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
앞으로 학교에서 민주주의 실험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독일은 ‘U18’이라고 하여 정식 선거 9일 전에 18세 미만의 어린이 및 청소년들은 자발적으로 모의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학교에서의 사전 모의 선거는 불법이지만 독일에서는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심지어 1살 어린이들도 모의 선거 참여가 가능하다. 이때 실제의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공약을 내걸고 어린이들로부터 심판을 받기도 한다. 어린이들도 나름대로 후보자들의 공약을 분석하고 장단점을 이야기한다. 독일의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18세 이상의 유권자들과 달리 녹색당과 동물보호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어른들과 비슷하여 어른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러한 경험들이 계속 쌓여 독일은 선거권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정책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정치교육을 한다고 해서 어른들의 정치적인 이슈만을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들에게는 그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합의하는 토론 수업이 절실하다. 학생들에게는 교복을 입는 것에 대한 생활안전부의 단속과 지도를 엄격히 할 것인지,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 토론이 학생 입장에서는 정치적 이슈이다. 학교 급식에서 비건 식단을 의무적으로 하자는 주장도 학생들에게는 치열한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있다. 공부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서 볼일 보는 것 등 모두가 정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이때 민주주의의 가운을 입은 토론 수업은 학생들의 민주주의 역량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