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g)
서두: 호주 공립학교 야외 체험학습 현황
호주의 공립학교에서 체험학습은 단순한 외부 활동이 아니라 교과 내용과 긴밀히 연결된 교육의 연장선이다. 체험학습은 학생들이 이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환경에서 경험함으로써, 학습 효과가 증진되고 장기 기억에 도움이 된다. 또한 협업, 문제 해결, 의사소통 능력, 문화 다양성 존중 등의 역량을 기르는 데 중요한 핵심 교육활동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NSW)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공립학교의 약 85%가 학기당 1회 이상 체험학습을 실시하며, 학교당 평균 3~5회의 외부 활동이 운영되고 있다. 주요 체험 장소로는 박물관, 과학관, 미술관, 연극 공연장, 농장 체험장, 국립공원, 해양 환경 센터, 원주민 문화 센터, 수영장, 야영장 등이 있다.
체험학습의 운영 절차 및 추진 체계
호주의 공립학교에서 체험학습을 준비할 때는 다음과 같은 표준 절차를 따른다. 모든 단계는 문서로 기록해야 하는데, 이는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 시 법적 근거 자료로 활용된다.
(1) 교육적 목표 설정
(2) 세부 일정 및 장소 계획: 필요한 성인-학생 비율을 산정하고, 인솔 교사 및 보조 인력을 배치한다.
(3) 위험 평가(Risk Assessment): 활동 장소, 교통수단, 건강 위험, 응급 대처 등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여 문서로 작성한다.
(4) 학교장 승인: 교사는 활동 계획서를 작성해 학교장 승인을 받는다. 수영, 등산, 외부 캠프, 국외 활동 등의 경우 교육청에 사전 통보하거나 승인 요청을 해야 한다.
(5) 학부모 동의서 확보: 활동의 목적, 장소, 시간, 비용, 위험요소, 연락처, 특별 지침 등을 포함한 문서에 보호자의 서면 동의를 받는다.
(6) 응급 대처 계획 및 보험 확인
(7) 활동 종료 후 평가 및 기록 보관
위험 평가(Risk Assessment Plan) 내용
체험학습 전, 학교 공식 양식에 따라 작성하는 위험 평가는 단순히 '위험 여부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체험학습 전 과정에 대한 안전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그에 따른 대응 전략을 계획하는 과정이다.
NSW 교육부와 ACECQA(유아교육 및 보육품질청)의 기준에 따르면, 체험 장소 정보, 학생별 이동 경로 및 수단, 참가자 구성, 활동 내용, 환경 위험요소, 학생별 건강 정보, 응급 상황 대응 계획, 통신 체계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단계별 주요 확인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2].
[1단계: 위험 요소 목록 작성]
미끄러운 바닥 → 넘어질 위험 / 물가 활동 → 익사 가능성 / 알레르기 있는 아동 → 음식 섭취로 인한 쇼크 / 열사병 가능성 등
[2단계: 각각의 ‘발생 가능성’과 ‘결과의 심각성’을 판단]
- 사고발생가능성(Likelihood): 거의 확실히 발생함/자주 발생할 수 있음/ 어느 정도 가능성 있음/ 발생 가능성은 낮음 / 거의 발생하지 않음
- 사고 결과의 심각성(Consequence): 사망 또는 심각한 장기 장애 / 병원 입원 또는 지속적 치료 필요 /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나 회복 가능 / 응급처치로 해결 가능, 큰 영향 없음 / 영향 없음 또는 사소함
[3단계: 평가표에서 교차점 색 확인으로 위험 등급을 결정]
예를 들면, 익사 위험(Possible + Critical) → Extreme(빨간색), 넘어짐(Likely + Minor) → Medium (노란색), 가벼운 알레르기(Unlikely + Minor) → Low(하늘색)
[4단계: 대응 계획 수립]
각 위험에 대하여 즉각 조치 필요 위험 요소 제거 또는 활동 중단(Extreme, High) / 통제 조치 필수(High) / 예방 조치 필요 (Medium) / 관찰 또는 간단한 예방 조치(Low/very Low)로 등급을 나눈다. 이에 따라 활동 취소, 구명조끼 의무, 전문가 동행 / 감독 인원 추가, 응급키트 휴대 / 교사 교육, 보호자 고지 / 기본 안내만으로 충분 등의 대응 계획이 나온다.
작성된 위험 평가는 반드시 학교장 또는 승인 책임자에게 제출되어야 한다. 이 위험평가서는 감정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 기준에 근거하여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또한, 사고 발생 시 이 평가서의 존재 여부와 실행 여부는 법적 책임 판단에 있어 결정적 근거가 되므로[9] 법적 방어 자료로도 매우 중요하다.
체험학습의 안전대책과 책임 구조
- 보호자 동의서의 의미와 한계
체험학습 전에는 반드시 보호자 서면 동의서를 제출받아야 하며, 해당 문서에는 활동 목적 및 일정, 이동 수단, 응급처치·의료조치 동의, 의료정보 제출 및 보험 정보 안내가 포함된다. 다만, 보호자 동의서가 책임 면제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교 또는 교사가 합리적인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을 경우, 보호자 동의서가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호주의 법적 기준이다[8].
- 학교(법인)의 비위임적 돌봄의무
호주 고등법원의 커먼웰스 대 인토비뉴(1982) 판결(Commonwealth v Introvigne(1982))은 학교가 학생에 대해 가지는 돌봄의무(duty of care)가 위임할 수 없는(non-delegable) 책임이라는 법리를 확립하였다[3]. 즉, 설령 교사가 현장에서 학생을 감독하고 있었고, 보호자로부터 사전에 동의서를 받았더라도,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학교 법인 또는 교육청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례 이후, 대부분의 교육 관련사고는 조직적 시스템 실패로 간주되어 학교 법인에게 책임이 집중된다.
실제 사례로, 2019년 호주 멜버른의 명문 사립학교인 킬빙턴 그래머 스쿨(Kilvington Grammar School)에서는 당뇨병을 앓던 학생이 베트남 체험학습 중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빅토리아주 산하 직업안전보건 감독기관인 워크세이프 빅토리아(WorkSafe Victoria)는 학교와 여행사를 기소하여 벌금형을 선고했다[4][5]. 또한, 2021년 피너클 칼리지(Pinnacle College) 체험학습 중 발생한 학생 익사 사고의 경우, 교사가 동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직업안전보건법(WHS, Work Health and Safety Act) 위반으로 판단되어 약 42만 호주 달러(한화 약 3억 7,800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6].
- 교사의 책임과 보호 구조
호주의 법체계는 교사의 '직무 범위 내 행동'에 대해 명확한 보호 원칙을 두고 있다. 교사가 학교 정책, 위험 평가서, 응급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수행한 경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뉴사우스웨일스 교사용 안내서(NSW Teachers Handbook)와 Go To Court Lawyers 웹사이트, 그리고 교육부 내부 지침 문서에 따르면, 교사는 정해진 절차 내에서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다면 법적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다[7][8][9]. 대표적인 법적 판례 및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커먼웰스 대 인토비뉴(Commonwealth v Introvigne, 1982년) 판결: 학교는 학생 보호 의무를 위임할 수 없으며, 시스템 실패는 법인의 책임으로 본다는 판결.
- 뉴사우스웨일스주 체험학습 운영지침(NSW Education Excursion Policy): 교사는 승인된 계획과 위험 평가를 따랐다면, 사고 발생 시 개인 책임에서 면제됨.
이 원칙은 사전 승인된 계획서에 따라 행동하였는지, 위험 평가를 반영하고 응급 대응 절차대로 이행하였는지, 학생의 상태 및 경고 신호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하였는지, 정직한 보고 및 문서화 여부에 따라 적용된다. 반대로, 무단 경로 변경, 학생의 건강 이상 무시, 응급 대처 실패, 허위 보고 등은 교사 개인에게 책임이 귀속될 수 있다.
결론 및 시사점
호주의 야외 체험학습은 교육적 가치, 학생의 안전, 교사의 법적 보호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학교는 체험학습의 최종 책임 주체로서 시스템 차원의 위험 관리를 해야 하며, 교사는 승인된 절차를 성실히 이행한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학생과 학부모는 충분히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참여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세부 계획을 문서화하는 것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실제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체계는 한국 교육현장의 체험학습 운영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명확한 책임 보호 기준은 교사들이 교육활동을 두려움 없이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장치이다. 체험학습을 장려하면서도,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