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고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2010년 공익광고에 등장했던 이 문구는 한국 부모와 학부모의 이미지를 날카롭게 조명해 주고 있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과도한 교육열과 성과 위주의 태도로 비판받는 학부모의 이미지가 응축되어 있다. 학부모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학부모의 역할은 어떻게 재정립해 나가야 할까?
과거와 현재의 학부모: 그 변화의 궤적
20세기 중반까지 학부모는 공적인 학교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을 기대하며 학교와 교사에게 교육권을 전적으로 위임했다. 교사는 존경받는 지식 전달자이자 인격적인 스승으로, 학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교육을 수행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사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학부모의 관심은 공교육보다는 학원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학교는 더이상 독보적인 교육기관이 아닌 단순한 인성교육과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 학부모의 요구는 더욱 구체화되고 강해졌다. 학업성취 위주의 교육관, 자녀수의 급감으로 인한 자녀 중심의 사고방식, 고학력 학부모의 증가, 인터넷과 SNS를 통한 정보 확산의 과정에서 학부모의 요구는 정당성을 넘은 간섭과 요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Tingley(2008)의 『How to handle difficult parents: A teacher’ survival guide』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교육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 미래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성스럽고 고귀한 직업으로 존경받아 왔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무조건 교사를 따르고 전적으로 아이를 맡기던 부모들은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좀 더 ‘깐깐하게’ 학교 일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내 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자라는지’ 당연히 알아야겠지만, ‘아는 수준’을 넘어서 교사의 권한과 역할 전반을 뒤흔드는 ‘위협’도 불사하는 ‘까다로운 학부모’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Tingley, 2008).
미국에서 ‘까다로운 학부모’는 1) 자녀의 거짓말을 부추기는 거짓말 공범, 피노키오 엄마, 2) 선생님 때문에 아이가 규칙을 어겼고, 선생님이 우리 아이의 잘못을 유독 지적하는 차별을 하고 있다고 우기는 절차 무시, 규칙 무시 싸움닭 엄마, 3) 교사의 태도 등을 문제 삼으며 협박하는 안하무인 부모 등이다(Tingley, 2008; 강대중, 2024). 한국의 경우, 학교와 교사를 그리고 사회를 힘들게 하는 1) 협박: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협박, 학부모의 지위를 이용한 협박, 2) 욕설과 가해: 무분별한 욕설과 비난, 교사에 대한 신체적 가해 3) 권한 침해: 교사에 대한 인권 침해, 감시와 간섭 등의 스토킹, 교사의 권한 침해, 4) 무리한 요구: 사소한 문제로 잦은 민원 제기, 특별 대우 요청, 개인 돌봄 지시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전제상, 2023; 엄문영, 김지현, 2024).
비합리적 민원과 교권 침해
대다수의 학부모는 묵묵히 학교를 신뢰하고 지지하며 자녀와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학부모로 인해 빚어진 파장이 학교와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엄문영, 김지현(2024)에 따르면, 2,000명의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2.4%가 교권침해를 경험한 바 있으며, 그중 32.99%가 학부모 민원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악성 민원은 ‘극소수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악성 민원들을 관통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는 무리한 요구와 인신공격, 교사 지도에 대한 불신이며, 그 생각의 뿌리는 다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첫째, 자신의 입장과 권리만을 생각하고 상대방(자녀의 친구 혹은 선생님 혹은 학교)의 입장과 권리는 존중하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이다. 이 욕구에 기반해 모든 상황을 자신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모든 기준과 잣대를 자신이 편리한 대로 바꾸려는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된다. 둘째,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계선 무시의 사고이다. 학교에서 자녀의 생활과 수업, 친구관계를 자녀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허용하지 못한다. 교실에서의 상황을 모두 알아야 하고 수업과 친구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간섭하고 싶어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수업권이나 생활지도 권한에 대한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계선의 문제는 결국 자녀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게 된다. 셋째, 비난과 지시를 넘어 폭력, 폭언, 협박 등으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태도이다. 정당한 교육활동으로서의 민원은 학부모로서의 교육권 행사로 건전한 교육과 학교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민원의 심각성 때문에 교사가 업무 부담과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고 동료학생들이 피해를 입으며 학교 행정이 저해되고 마비된다면 이는 정당한 교육활동이 될 수 없다. ‘재식거리’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식물을 경작할 때 식물 간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 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방울토마토나 감자를 심는다면, 각각 60cm, 30~40cm의 거리를 유지하여 심어야 한다고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심어야 식물이 엉키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재식거리’를 두지 않으면 그 식물은 착색이 지연되고 당도가 떨어지며 병해충 발생이 많아진다고 한다. 부모와 자녀, 부모와 학교 간에도 이러한 ‘재식거리’ 즉 ‘경계선’을 두지 않으면 ‘밀착된 경계선’으로 인해 수많은 병리적 현상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들(김은정, 2019)을 우리는 많이 접해 왔다.
학부모의 새로운 역할: 동반자로의 전환
그렇다면 학부모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가정 내에서 부모의 역할, 학교에서 동반자,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학부모와 학교의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최근에는 가족과 학교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이중 역량강화에서 나아가 지역사회 및 대학을 포함한 사중(quadruple) 파트너십으로의 확장이 제안되고 있다(Kuo & Stanley, 2023). 이러한 협력을 위해서는 첫째, 학부모는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교사와 학교의 요청에 협력해야 한다. 교사 역시 학부모의 합리적인 요구를 경청하며 학부모를 학교교육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의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이 성공의 해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성공 사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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